이상하게 그림이 매가리가 없다가도
점 몇개만 툭툭 찍으면
확 살아나기도 한다고들 그런다.
용의 눈동자에 점을 찍어
생명을 불어넣는 화룡점정이라고 할까.
예전에 10호F 유화 캔버스에 가득
흰 오리 다섯 마리를 그려놓고는
눈만 껌뻑이기를 몇몇 달
모양들 명암은 진갈색 바탕에 괜찮은데
당최 눈이 안 떨어져서
꿈쩍 못하다가
그 어느 날 이판사판
주황색 유화 물감 딱 한방울을
페트롤 기름 약간에 묻혀서
거칠고 말라 비틀어진 유화20호 붓으로 빠악빡빡
전국적으로 문질러서 얍실하게 도포했더니
"어? 아니 이럴수가!
봐줄만하네."
그리하여 완성되었다. 적어도
내 눈에는 그 후 한참을 두고 보아도 그랬다.
물감 한방울 던져넣는다고 다
살려내는 경우가 되는건 아닐꺼다.
사진의 경우에는 뽀샾수정이 있긴 하지만,
어느 정도 원본의 한계가 있어서인지
죽고 살고 그리오래 걸리지 않는다.
그림은 사진보다는 유동성 주관성이 많은 탓인지
금방 죽지 않는다.
혹 하얀 젯소로 덧방 칠해 얼추 죽여 놓아두었다 하더라도,
그대로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질감으로 말미암아
다른 작품에 잘 맞아떨어져 멋지게 살아나기도 한다.
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일필휘지로
운좋게 두 세시간으로 완성하기도 한다만,
바램과 달리 드물었다.
아 95프로까진 온 것 같은데
정상이 눈앞에 잽힐 것 같은데. 하지만
이 때부터 남은 길이 그리 만만ㅎ지 않다.
비유하자면 100미터 달리기에서 11초 12초까지는
사람들 흔히 도달하지만,
그 위에 0.1초 0.2초줄이는 데는
타고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.
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을 때도
95프로까지는 말로 소통되고 말 외에는 길이 없다하지만,
정작 '이뭐꼬'는 불립문자 이심전심 말이 끊어진 곳
잽힐 듯 가까운 듯 넘사벽이라 하지않는가.
남들 다 쉽게 하는걸 누가 못해
어려운걸 잘해야 으뜸 잘하는거지.
그러니 다와간다고 마음놓지 말고
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.
힘들어도 한 걸음 더 떼면 그만큼 더 오르고
외로운 작가 고뇌와 절망감 헤집고 남은 5프로
뜨겁게 나아가야만 한다.